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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부적리 고분군 ’ 국가지정문화재로 신청

기사입력 2007.07.2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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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울러, 도지정문화재 2건 및 문화재자료 4건 지정 확정 -

    경상북도(지사 김관용)는  최근 道문화재위원회 제2분과회의(07.7.18)를 개최하여 ‘경산 부적리 고분군’을 국가지정문화재(史蹟)로 지정신청하기로 하였으며, ‘경주이씨 양월문중 소장 고문서 및 전적’, ‘영주 성혈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 2건을 도지정문화재(有形文化財)로, ‘경주 주사암 영산전 석조삼존불좌상’, ‘영주 성혈사 신중탱화’, ‘고령 매림재 소장 판목’, ‘성주 심원사 석조유물’ 등 4건을 문화재자료로 지정키로 하였다. 이번에 6건의 문화재를 지정하면 경상북도의 지정문화재는 총 1,728점(국가지정 560, 도지정문화재 655, 문화재자료 513)이 된다.

    아울러, ‘경절공 손중돈 정부인 홍씨의 묘갈·석인상’, ‘김천 칠불사 후불탱’ 등 2건을 유형문화재 지정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이번에 문화재적인 가치가 인정된 2건의 문화유산은 경상북도문화재보호조례에 규정된 문화재 지정예고절차를 거쳐 차기 문화재위원회에서 도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경산 부적리 고분군은  임당동과 조영동을 연결하는 구릉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고대 압독국(押督國)을 구성했던 최고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표조사만 이루어진 상태이며, 6기의 고분 중 1기만 수습조사 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5기의 고분은 직경 20m 이상의 대형급인데 보존상태가 양호하지 않으며 경작 행위로 인해 봉토의 규모가 점점 줄고 있는 실정이다. 부적리 고분군은 임당동 고분군(사적 제300호), 조영동 고분군(사적 제331호)과 더불어 경산 지역에 위치한 압독국의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되어 국가지정문화재(史蹟)로 지정신청하기로 결정하였다.


    아울러, 이번에 지정이 확정된 6건에 대한 지정사유는 다음과 같다.

    경주이씨 양월문중 소장 고문서 및 전적(慶州李氏 楊月門中 所藏 古文書 및 典籍)
    이 고문서 및 전적은 경주에 세거해 온 경주이씨 양월문중 소장의 교지(敎旨), 호구단자(戶口單子), 소지(所志), 완의(完議), 입의(立議), 유향소(留鄕所)관련 고문서 및 필사원본류, 구강서원 관련 필사원본류, 죽헌집 등이다.

    이들 고문서는 유일본으로서 관찬사료의 미비점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특히 조선시대 유향소관련 문건과 경산 자인현 유향소 분설(分設)에 따른 서목(書目), 보문평 개간을 둘러싸고 야기된 갈등으로 품관(品官)과 역리(驛吏)들이 작성한 완의와 소지 등은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따라서 “경주이씨 양월문중 소장 고문서 및 전적”을 一括(317點 2冊)하여 有形文化財로 지정한다.

    영주 성혈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榮州 聖穴寺 石造毘盧遮那佛坐像)
    나한전 내에 봉안되어 있는 이 불상은 지권인을 맺고 연화좌에 결가부좌한 비로자나불상이다. 경직되고 형식화된 인체와 옷주름의 표현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후반기(9세기 후반) 불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무릎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윤곽선이 비교적 자연스러우며 옷주름의 단면도 곡선으로 처리하는 등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 불상의 특징이 있다. 불단에 가려서 세부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대좌는 3단의 연화좌로서 불상 조성 당시의 것으로 추정된다. 양손은 파손되어 보수하였고 양 무릎의 끝부분이 떨어져 나간 상태이지만,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므로 有形文化財로 지정한다.

    경주 주사암 영산전 석조삼존불좌상(慶州 朱砂庵 靈山殿 石造三尊佛坐像)
    영산전 내 석조삼존불상은 도금된 상태로 중앙에 본존불좌상, 좌우에 협시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삼존상 모두 손모양은 같은데, 오른손은 촉지인과 유사하며 왼손은 손가락을 굽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였다. 좌협시보살은 보관을 쓰고 있으며, 특히 두건을 쓴 우협시보살은 매우 보기드문 머리모양을 하고 있어 주목된다. 발원문을 통해 1725년(영조 1)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경 등 복장물(1枚 7冊)과 함께 文化財資料로 지정한다.

    영주 성혈사 신중탱화(榮州 聖穴寺 神衆幀畵)
    대웅전 좌측벽에 봉안되어 있는 이 신중탱화는 화면의 상단 오른쪽에 다소 크게 묘사된 제석천과 대칭하여 왼쪽에는 위태천이 배치되어 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하단에 그 권속들이 묘사되었다. 제석천의 권속으로는 왕의 모습으로 일월관을 쓴 일궁천자·월궁천자(日宮天子·月宮天子),

    주악천녀(奏樂天女), 천동(天童) 등을 그리고, 위태천의 권속으로는 무장(武將)의 천룡(天龍)을 비롯한 팔부중(八部衆)을 함께 그린 형식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의 수가 적은데도 불구하고 도상의 구조가 단조롭지 않고 안정감이 있으며 바탕색이 다소 어둡지만 포(布)가 비칠 정도로 얇게 바른 차분한 색조, 유려한 필치가 돋보인다. 전체적으로 박락(剝落)이 있으며 화면(세로131㎝ × 가로116㎝)이 작은 편이나, 신중탱화로서는 연대가 올라가는 1775년(영조 51) 作이다. 따라서 文化財資料로 지정한다.

    고령 매림재 소장 판목(高靈 梅林齋 所藏 板木)
    이 판목은 매림서원과 관련이 있는 책판 125점, 능화판(菱花板) 1점이다. 매림서원은 1707년(숙종 33)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곽수강(郭壽岡)과 오선기(吳善基)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책판은 예곡선생문집(禮谷先生文集), 매헌선생문집(梅軒先生文集), 한계선생문집(寒溪先生文集)의 판목으로 순조 년간(1801~1834)에 판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능화판은 위 3종의 서적을 판각해서 제책할 당시의 것으로 추정된다. 책판과 함께 능화판이 전래되는 경우는 많지 않으므로 이를 一括(126點)하여 文化財資料로 지정한다.

    성주 심원사 석조유물(星州 深源寺 石造遺物)
    성주 심원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지원(智遠) 스님이 크게 중수하여 번성하였고, 1593년에는 의병들의 실화(失火)로 불탔으나 이를 다시 중수하였다고 한다. 문화재로 지정 신청한 석조유물은 심원사에서 출토된 석조불상대좌, 배례석, 불상광배,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신방석, 석탑기단갑석 등이다. 이들 유물은 통일신라~고려 초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불상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갖춘 주형광배(舟形光背)로 전체적으로 우수하다고 하겠으며, 향로 2좌를 배치한 예는 극히 드문 형식이다. 따라서 “성주 심원사 석조유물”을 一括하여 文化財資料로 지정한다.

    경상북도는 전국 最高·最多의 문화재를 보유한 광역자치단체로서 문화재 보존·관리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문화유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적극 모색해 나갈 방침이다. 아울러, 문화재청과의 협의를 통해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을 지속적으로 늘려감으로써 예산절감과 지역 문화재의 위상을 제고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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